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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이런 것 봤어

'돌보는 아동' 취재기록 - 시사인 vol 846

by 푸른복숭아 2023.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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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은 시사IN 846호 커버스토리를 요약한 것임을 밝힙니다.>

 

목차:
돌보는 아동과 영케어러 실태
“네가 아픈 엄마 잘 돌봐야지”
“조금 더 일찍 발굴되었다면…”
‘소년소녀가장’이 사라진 이후

돌보는 아동과 영케어러 실태

 

 열 살 하은이는 김밥을 쌀 줄 안다. 학교 현장체험학습(소풍) 도시락을 스스로 챙겨왔다. 장애를 가진 엄마와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친 아빠를 돌보느라 그 나이에 벌써 청소·빨래·요리에 능해졌다. 여덟 살 미소는 아침마다 오빠(14)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등교한다. 오빠는 중증 지체장애인이고 부모는 모두 지적장애를 앓고 있다. 오빠에게 배정된 장애인 활동지원사가 갑자기 일을 그만둘 때마다 미소는 학교를 결석해야 했다. 민수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고3이 된 지금까지 언어·청각장애인 아버지와 어린 동생을 혼자 돌보고 있다. 집안일은 물론이고 아버지가 은행, 관공서, 병원을 들를 때마다 동행해 의사소통과 통역을 돕고 있다. 가족을 돌보느라 자기 자신에게는 시간과 에너지를 거의 쓰지 못한다.


하은, 미소, 민수와 같은 아이들을 외국에서는 ‘영케어러(young carer)’라고 부른다. 신체적·정신적 질병이나 장애를 지닌 가족 구성원을 돌보는 아동·청소년·청년을 아우르는 말이다. 1980년대부터 영국을 중심으로 이들에 대한 실태조사와 연구가 시작되었다. 지금은 서유럽 국가들과 미국·일본 등 많은 국가에서 영케어러 지원 근거를 만들어 정책들을 시행하고 있다. 각국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나라마다 대략 청소년 인구의 5~8%가 영케어러인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에서는 이런 아이들을 그저 ‘효자 효녀’ 혹은 ‘소년소녀가장’ 정도로 불러왔다.  병든 부모와 조부모를 간호하며 동생 밥 차려주고 머리 묶어주고 등하교시켜주는 ‘장하고 대견하고 짠한’ 아이들의 삶을 우리 사회는 꽤 익숙하게 목격해왔다.

하지만 이들은 한 번도 공식적으로 호명된 적이 없다. 국가와 지자체에서 이 아이들을 부르는 법적·정책적 이름도, 지원의 틀도 없다. 제대로 된 실태조사를 한 적이 없어서 이런 아이들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공식적 통계조차 없다. 영케어러 정책은 ‘청년정책’으로만 한정되어서 10대 이하 아동은 거기 낄 자리가 없게 되었다. 가족돌봄 ‘청년’을 위한 정책은 쏟아지는데 가족돌봄 ‘아동’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같은 자리에 머물렀다.

사실 아동이 돌봄 행위에 매진한다는 건 그 자체로 아동 권리의 침해다. 하지만 이는 이론적이고 이상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현실에서는 가정 내에서 돌봄받는 대신 ‘돌보는’ 아동·청소년이 다수 존재하고 있다. 사회적 관심과 정책의 부재 속에서 이들은 가족돌봄의 고통과 부담을 혼자 오롯이 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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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아픈 엄마 잘 돌봐야지”

 

  아픈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사는 열다섯 살 지윤이도 그런 경우다. 올해 중3이 된 지윤이는 며칠 전에도 새벽에 응급실을 다녀왔다. 기억나는 횟수만 벌써 30번째다.  지윤이도 스트레스성 두통과 위염에 시달린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는지 묻자  “주변에서 다 그래야 한다고 하니까요. 친척들 만나면 모두 그러세요. ‘네가 엄마 잘 돌봐야 한다’.”로 답한다.

지윤이 같은 상황에 놓인 아동·청소년은 얼마나 있을까? 정확히 조사·집계된 바는 없지만 관련된 몇 가지 통계를 가지고 어렴풋이 짐작만 해볼 수 있다.

 

-2018년 아동종합실태조사에서 ‘집안일 돕기’에 하루 3시간 이상을 쓴다고 답한 만 18세 미만 아동의 비율이 3.5%였다.

-지난 한 해 ‘가사’를 이유로 학업을 중단한 고등학생이 전국에서 115명이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재단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은 아동·청소년 149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46%가 가족돌봄 아동·청소년이었다. 그중 23%가 초등학생이고 28.3%가 5년 이상 장기 돌봄 상황이었다. 청소년 인구의 대략 5~8%가 영케어러라는 해외 연구 사례들을 바탕으로, 한국이 그 나라들보다 상황이 결코 낫지 않다는 전제하에 단순 대입해보면, 국내 10~19세 청소년(2022년 해당 연령 인구 총 460만8479명)으로만 범위를 좁혀도 약 23만~36만9000여 명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2021년 발생한 22세 청년의 ‘간병 살인’ 비극이 계기가 되어 영케어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보건복지부는 이듬해 4월부터 관련 실태조사를 실시했다.서울, 대전, 광주, 대구, 서울 서대문구, 경기 광명, 충북 괴산, 전남 나주, 경남 김해 등 지자체 단위에서도 관련 조례와 지원책들을 하나둘씩 내놓고 있다.

그런데 정부와 지자체에서 정의하는 영케어러는 주로 20~30대 ‘청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13세 미만 연령의 어린이는 아예 포함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는 지원 대상자 연령 범위를 만 13~34세 청(소)년으로 못 박아 내년도 가족돌봄청년 지원 시범사업 예산 20억9400만원을 배정했다. 

만 13세 미만 초등학생 이하 아동은 아무리 힘든 가족돌봄 상황에 놓여 있다 할지라도 정부의 영케어러 정책 지원 대상에 들어가지 못한다.

 

반면 해외 국가들이 시행하는 정책의 포인트는 대상을 발굴하고 연령에 따라 맞춤형 지원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스웨덴이나 영국의 경우 영케어러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아동·청소년이 행하기에 부적절한 돌봄 행위에 대해 매우 면밀하게 조사하고 그 행위를 아동 대신 국가나 지자체가 해줄 수 있는 방안을 찾는다. 대상아동도 빈곤계층으로 한정하지 않고 이민지 가정 등 취약계층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조금 더 일찍 발굴되었다면…”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눈’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특히 학교와 병원 종사자들에게 그 역할이 요구된다. 정부와 지자체는 관련 지침서를 만들어 학교와 병원에 배포하고 교육·의료·복지기관들과 연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영케어러를 최대한 조기 발굴해 희생되지 않게끔 도와준다. 빨라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나이에 이르러서야 발굴되고 지원받을 수 있도록 설계된 우리나라 영케어러 지원 체계와 비교되는 부분이다. 

 

관련 연구원이 수행한 실태조사 및 지원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실제 가족돌봄 기간이 장기화될수록 영케어러의 우울 수준이 높게 나타났고 ‘학업 유지의 어려움’의 고충이 크다고 조사됐다. 

성규(18)도 그런 경우다. 성규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아픈 어머니와 갓 태어난 11살 터울 여동생을 위해 집안 살림을 도맡아왔다. 결석이 잦아지자 학교에서는 자퇴를 권했고, 지역 사회복지 단체에서 성규 사례를 발견했을 때 이미 성규는 ‘학업 중단자’가 된 이후였다. 이를 눈여겨본 어린이집 원장이 사회복지기관에 성규를 연결해준 ‘우연한’ 기회로 지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이미 중단한 학업은 되돌릴 방법이 없었다. 담당 사회복지사는 “조금 더 일찍 발굴되었으면 학업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울 수도 있었는데 아쉬움이 크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어린 영케어러일수록 자신이 사회적으로 도움받아야 할 대상에 해당하는지 인지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 문제 인식이 안 되니 발굴과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

 

‘소년소녀가장’이 사라진 이후

 

국회에 이런 요구들을 담은 법안이 몇 개 제출되어 있다. 지난 3월23일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가족돌봄 아동·청소년·청년 지원법안’은 34세 이하 가족돌봄 아동·청소년·청년을 대상으로 지원 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고 지원위원회와 지원센터를 설치·운영하는 등 국가와 지자체의 종합적·지속적 지원 의무를 명시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별도의 법률로 가족돌봄 아동을 지원하는 방안에 난색을 표했다. “아동복지법 등 기존 법 체계 내에서 보완할 수 있고 국가와 지자체에 막대한 재정 부담 발생이 우려된다”라는 것이다. 또 다른 반대 이유는 “아동은 돌봄의 대상으로, 사실상 돌봄을 제공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돌봄 주체로서 별도 정책 대상으로 명시하는 것은 아동보호 측면에서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설명대로, 소년소녀가장 제도가 ‘아동 권리 확보 차원에서’ 폐지된 건 맞다. 아동에게 가장의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 정서적 아동학대일 수 있다는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의 지적에 따라 정부는 2014년부터 공식 문서에서 ‘소년소녀가장’이라는 이름을 지웠다. 대신 ‘보호 대상 아동’을 지정해 시설 입소와 가정위탁을 권장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소년소녀가장’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취약 아동을 발굴·집계·지원하던 시스템도 상당 부분 마땅한 대체 방안 없이 함께 유실되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많은 공간이 사각지대로 남았다. 예를 들어 조부모와 함께 사는 가족돌봄 아동의 경우, 돌봄의 부담에도 불구하고 정서적으로 끈끈해 아이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기를 원해도 법적으로 가정위탁 지원 조건에 들지 않는다. 국가 지원을 받으려면 아이가 가족과 헤어져 시설 입소를 하거나, 아니면 아무 도움도 받지 않고 기존 가정 속에 남거나 두 선택지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역돌봄(아동이 보호자를 돌보는) 상황 속에 있는 많은 위탁가정 아동이 지원금이 끊길까 두려워 자신의 가족돌봄 상황을 숨기거나 드러내기를 꺼린다고, 사회복지 현장 전문가들은 전했다.

결론

 

 용어를 없앤다고 그 대상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제대로 된 대체 방안을 마련하지 않은 채 공식 통계와 지원의 대상에서 빼버렸을 때, 문제는 오히려 보이지 않는 그늘 속에서 더 곪고 커질 수 있다는 걸 ‘소년소녀가장’ 폐지의 빈 구멍이 보여줬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지난 4월5일 국회에 제출한 관련 법률안 제정 촉구 의견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족돌봄은 전 생애를 관통하는 연속적인 과정이며, 특정 연령기에만 나타는 현상이 아닙니다. 지원의 목적은 가족과 아동을 분리하거나 가족돌봄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돌봄의 상황 속에서도 또래 아동과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국가가 아동이 돌봄 주체인 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돌봄의 대상’이라는 이유만으로 정책대상에서 배제한 채 별도의 지원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는 것이 과연 아동의 권리는 높이는 것인지 다시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관련사이트: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언제나 어린이 곁에, 초록우산

www.childfund.or.kr

 

↓↓↓↓↓↓↓↓↓(서서울생명의전화)

 

 

영케어러 [가족돌봄 청(소)년] Recovery지원사업

영케어러 대상자가 되어 경제악화로 학업병행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케어러를 위한 서서울생명의전화 “...

blo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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