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요즘 나는/이런 책 읽어

[총,균,쇠] - 2부 6장 농경, 선택의 기로 - 우수한 농경민의 후예라는 착각

by 푸른복숭아 2025. 5. 31.
728x90
반응형
SMALL

 

인류의 기원을 '총', '균', '쇠' 라는 세가지 도구를 가지고 설명하는 책이다. 나는 특히 대상의 '뿌리'에 천착하는 글을 너무나 좋아하는데 유발하라리의 사피언스 시리즈를 읽었기 때문에 이 책에는 특별히 흥미를 느끼지 않아왔다. 책빵 추천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시리즈 보다 더 오랜 기원을 설명하는 내용이라 매우 놀랐다. 유발하라리도 이 책을 읽고 사피엔스를 쓸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유발하라리의 책이 역사학을 기반으로 한 학부 교양 수준의 지식이라면 '총,균,쇠'는 인류학과 고고학, 역사학, 생물학 등을 총망라한 학술적인 내용을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설명한 책으로 보면 좋겠다.

 

1부 에덴에서 카하마르카까지 - 인류의 이동에 대해 설명했다면

2부 식량생산의 기원과 확산은 인류의 영원한 숙제 '먹고 사는 문제'에 있어서 초기 인류의 선택에 대한 작가의 통합적 해석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 <6장 농경, 선택의 기로> 부분의 내용을 살펴보자.

 

초기 인류는 모두 수렵·채집민이었다. 예외는 없다. 지금은 어떤가. 농경민의 후예로서 말하자면 '수렵·채집민은 미련하고 뒤떨어졌으며 야만적으로 보인다.'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 밖에 없다. 작가는 그런 독자에게 '실제로 그러한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일부 지역에 존재하는 수렵·채집민들은 과연 순전히 어리석고 미련하기 때문에 그들의 오랜 전통을 포기하지 않는 것일까?

 

-우리의 편견-

작가는 독자의 이런 인식에 있어서 잘못된 점을 몇 가지 지적한다. 첫째, 우리가 역사교과서에서 배우는 것처럼 '식량생산(농경)'이 '발견'되지도 '발명'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농경은 의식적 행위와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초기 인류의 의식적이지 않은 선택의 결과로 진화한 것이다. 둘째, 우리는 농경민, 저들은 수렵·채집민이라는 경계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농경민은 정주생활을, 수렵·채집민은 이동생활을 했을 것으로 강하게 짐작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혼합적인 생활방식이 더 자연스럽고 흔한 방식이었다. 셋째, 농경민은 땅을 관리하는 능동적인 존재로, 수렵·채집민은 단순히 먹을 거리를 구하려 다니는 수동적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 또한 흔한 착각이라고 한다. 수렵·채집민도 농경민 못지않게 그들의 '땅'을 적극적으로 관리했다. 과거 화전민과 같은 방식으로 땅을 일구기도 했다.

 

그러니까 초기 인류의 핵심은 '먹을 거리를 구하는 것'이지 인류 역사의 발전을 염두에 두고 '농경을 할까? 수렵·채집을 할까?' 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는 당시 인류의 심정을 조금만 헤아려 본다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지난 밤까지 먹을거리 고민을 하다가 잠이 든 한 농경민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오늘은 지난번에 봐둔 밭에 가서 땅을 좀 파둘까? 그럼 가을에 곡식을 좀 거둘 수 있을 텐데. 아니야, 요즘 강에 물고기가 많던데... 물고기 몇마리면 이틀은 걱정 안해도 되지. 아니, 요즘 사슴새끼가 숲에 돌아다닌다고 하던데 사슴을 잡으면 한동안은 고기를 먹을 수 있겠군.. 아 어쩌지...

완전한 수렵·채집민에서 농경민으로 전환되기까지 인류는 이런저런 고민을 하였고 다양한 요인들로 인해 신속하게 또는 매우 느리게 식생활 방식이 전화되었다. 그렇게해서 완전히 전환되는데는 수천 년이 걸렸다. 이들의 시간과 에너지가 수천 년 동안 축적된 결과가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으로 이른 것이다. 따라서 이런저런 고민이 필요없는 상황이었다면 아직도 수렵·채집의 방식은 유효하다.

 

-식량생산의 경쟁력은 무엇이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경은 거의 완전히 수렵·채집을 대체해왔다. 농경은 왜 수렵·채집보다 더 경쟁력이 있었던 걸까? 무엇이 그들에게 더 유리한 부분이었을까? 작가는 다섯 가지 요인으로 분석하고 있다.

첫째, 홍적세※가 끝날 무렵 인류의 사냥감인 대형 포유류가 대거 멸종했다. 따라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보아야 한다.

둘째, 사냥감 고갈로 인해 수렵·채집에 따른 보상은 보잘것 없어진 반면, 식량 생산에 따른 보상이 상대적으로 더 좋았다. 이는 당시 기후변화와 맞물리는 결과이다.

셋째, 채집한 먹을 거리를 가공·저장하는 장비가 발전하면서 식량 생산시에도 도구에 의존하게 되었다.

네번째, 인구밀도와 식량 생산의 증가가 상호 영향을 주었다. 또 정주생활을 하면서 출산간격이 짧아진 요인도 인구밀도의 증가에 영향을 미친다.

위 네 가지 요인을 종합하면 수렵·채집에서 식량 생산 방식으로의 전환이 왜 하필이면 기원전 8500년경 이루어졌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다섯째, 마지막 요인은 지리적 경계이다. 식량 생산자의 인구밀도가 높아지자 기존의 수렵·채집민은 두가지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쫓겨나거나 받아들이거나. 대부분의 경우 받아들이는 쪽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여전히 뚜렷한 지리적 경계가 있거나 도저히 식량 생산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척박한 지역의 수렵·채집민은 여전히 그들의 방식을 고수할 수 밖에 없다. 근대에도 미국의 애리조나 원주민(사막), 아프리카 남단의 코이산족(부적합한 기후),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고립되 지형)의 경우에서 보듯이 근대까지 수렵·채집 방식을 고수한 사례가 있다.

 

-마무리-

한국사와 세계사를 공부할 때 은연중에 농경민에 대한 자부심이 꿈틀대는 경우가 있다. 내가 겪은 일도 아닌데 피해자의 입장에서 유목민을 바라보기도 하고 그들의 삶에 대해 경멸하는 듯한 태도를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다. 작가는 이런 생각에 도끼자국을 내게 한다. 일편 건조하면서도 세심한 눈빛으로 인류의 역사를 관찰하는 작가의 다정함이 느껴졌다. 나도 갈라치기 그만하고 다정하게 바라봐야겠다.

 

 

※홍적세(플라이스토세): 신생대 제4기의 첫시기. 인류가 발생하여 진화한 시기. 지구가 널리 빙하로 덮여 매우 추웠고 매머드같은 코끼리와 현재의 식물과 같은 것이 생육하였다. (제4기: 약 200만년~현재이 이르는 지질시대. 플라이스토세와 현세로 나누며 빙하의 발달과 인류의 출현이 특징)

 

 

728x90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