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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이런 책 읽어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 - 우리 모두의 세상

by 푸른복숭아 2024.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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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 의 Vladimir Kudinov [동물농장] 속의 '복서'는 크고 우람한 몸을 가졌다. 그가 농장에 대해 가졌던 마음 만큼이나 그가 행복하기위해 해야했던 일은 무엇일까?


 

 새로운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방장께서 '책슐랭'이라는 멋진 이름을 지으셨는데 까다로운 미식가처럼 신중하게 책을 고르고 천천히 그 맛을 음미하듯 책을 읽는 모습이 상상된다. 실제의 나는 미식가와 거리가 있기는 하지만 책은 미식가처럼 읽고 싶다. 좋은 인연으로 좋은 책들을 읽었으면 한다. 

 

새로운 독서 모임을 첫 도서는 [동물농장]이다. 처음에 책이 선정되었을때는 조금 의아했다. '지나치게' 유명한 책이라서 마치 음식평론가가 유명 레스토랑에 갔는데 메뉴로 '라따뚜이'가 나왔을 때처럼 그 평론가의 당혹스러움이 오버랩됐다. 약간의 댱혹스러움. 하지만 책을 읽자마자 그런 생각은 날아가버렸다. [동물농장]은 확실히 클래식이었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그 때는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책 속에서 살아서 나와 걸어 다니고 나에게 말을 걸었다. 멋진 책이다. 


시대를 분석하는 작가의 시선

  이 책이 쓰여졌던 시기는 조지 오웰의 전체 생애가운데 후반부에 속한다. 이미 작가로서 명성을 쌓은 상태였던 조지 오웰이 그의 인생 후기에 쓴 책이다. 19세기~20세기 초반 제국주의와 파시즘을 경험한 조지 오웰의 철학이 잘 드러나있다. 특히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의 배신과 같은 역사적인 사건이 이 작품의 직접적인 배경이 된다. 그는 스스로 사회주의자였지만 이념에 경도되지 않고 인간의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본다. 

 

 우리는 역사적인 사건을 접할 때 이미 여러 학자들이 연구한 결과를 배운다. 일목요연하게 사건의 개요와 역사적 위치와 의미에 대해 이미 정리가 끝난 사건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 당시 사람들이 그 사건을 바라봤을 때는 이런 토대가 없다. 아마 인류 대부분은 지구상에서 그런 사건이 벌어졌는지 조차 모를 테고, 일부의 사람들에 의해 회자되는 사건에 대해 당시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바라봤을까? 조지 오웰은 이런 측면에서 매우 뛰어난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가 사건을 분석하는 능력은 매우 탁월해서 마치 타임슬립을 해서 수십년 뒤의 일을 보고 온 사람같다. 게다가 그가 보고 듣고 우리에게 전한 이 이야기는 지금도 여기에도 벌어지고 있다. 

 

역사는 진보하는가? 조지 오웰은 이 질문에 무엇이라고 답할까?  

 

출판사 책 소개

조지 오웰은 『동물농장』에서 인간의 속박에서 벗어나 혁명을 이루고 이상 사회를 건설한 동물 공동체가 변질되는 모습을 통해 구소련의 역사를 재현하며 스탈린 독재 체제를 강도 높게 비판한다. 작중 여러 등장인물 중 인간 주인인 존즈는 러시아 황제 니콜라스 2세를, 혁명을 호소하는 늙은 메이저는 마르크스를, 독재자 나폴레옹은 스탈린을, 나폴레옹에게 축출당하는 스노볼은 트로츠키를 상징한다. 또한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동물학살’과 ‘외양간 전투’ 역시 각기 스탈린 시대의 대숙청과 연합군 침공 등으로 연결된다.
혁명이 성공한 후에 어떻게 변질되고, 권력을 잡은 지도자들이 어떻게 국민을 속이고 핍박하는지를 면밀히 그린 이 우화는 특정한 시대에만 한정되어 읽히지 않는다. 이 작품은 인류가 사회를 이루고 살 때부터 벌어진 ‘독재’를 함축적인 등장인물과 사건을 통해 그려내어 지금까지도 유효한 풍자를 담고 있으며, 그렇기에 조지 오웰이 지닌 사회비판적 문학의 역량이 여실히 드러나는 작품이다.

 

줄거리

 존스씨 농장의 동물들이 농장에서 노예와 같이 살고 있는 자신들의 삶에 부당함을 느끼고 급기야 존스씨를 농장에서 내쫓는다. 농장 동물들의 대표로 스노우볼이 지목되고 행복한 농장에서의 새로운 삶이 시작될 것 같다. 하지만 곧 돼지들 내에서 권력다툼이 일어나고 나폴레옹이 스노우볼을 내쫓고 동물농장의 리더가 된다. 그는 동물 농장의 동물들과 함께 세운 규칙도 바꾸어가며 통치자로 군림하고 농장의 동물들은 다시금 노예신세로 전락한다. 인간을 경멸하고 인간처럼 되기를 거부했던 농장의 동물들은 인간처럼 자고 먹고 걷는 나폴레옹와 돼지들을 눈을 반짝거리며 쳐다본다. 

 

농장의 동물들은 눈을 반짝거리며 돼지들을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가 지금보다 더 어렸다면 "돼지들의 모습에 경악하고 가만두지 않겠다고 이를 가는 마음으로 보았을 것이다." 라는 도덕책에 나올 법한 대답을 했을 테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이 질문에 상당히 고민을 하게 된다. 글쎄.. 농장의 동물들도 정말 그렇게 정의로운가? 그들은 그들이 바라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그들은 그런 세상이 올 것을 믿는가?

 

어쩌면 혁명을 호소하는 늙은 메이저의 멋진 말 몇마디와 호소력있는 목소리에 경도되어 무엇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여기까지 파도에 모래 쓸려오듯 온 것은 아닐까? 자신만의 눈으로 세상을 보거나 자신만의 분별력으로 세상의 일들을 판단할 능력이 애초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농장의 동물들에 대한 불신이 매우 강하게 내 머리 속에 박혀있다.

농장의 동물들에 대한 이 같은 불신은 어디서 왔을까? 나는 그들의 눈에 있는 반짝거림에 '나도 저들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메이저가 말했던 세상, 스노우볼이 약속했던 세상이 이제 끝나버린 마당에 그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든 그 목표가 제거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이 도덕적으로 나빠서가 아니라 그들이 충분히 어리석기 때문이다. 

메이저는 죽었고 스노우볼은 어딘가로 가버렸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판단하기 매우 어렵다. 무엇이 행복이고 무엇이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한 정해진 답도 없고 - 답이 있는 듯 보이지만 정말 그게 답일까?-  과거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던 가치는 유물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각자 개인의 판단과 분별력 그리고 '능력'에 모든 것을 맡길 수밖에 없는데 알다시피 농장의 동물들은 대부분 글도 모른다. 훌륭한 지도자없이 스스로 바람직한 삶을 개척하기에는 너무 무지하다. 마치 눈에 안대를 끼고 저 세상 끝 어딘가에 있을 에덴동산을 찾아가는 꼴이다. 아마 농장의 동물들은 많은 경우 '벤자민'과 같은 삶의 방식을 택하거나 '양들'처럼 아무 생각없이 누군가의 메아리가 되거나 '몰리'가 되는 축도 있을 것이고 이름없는 깡마른 '복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존스씨가 있을 때의 애초의 농장에서처럼 '생긴대로' 살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동물농장의 상황과 바늘하나만큼의 차이도 없다. '가치가 부재한 세상' 이 되었다. 내가 왜 집을 사는지, 또는 왜 사고싶은지, 왜 외체차가 타고 싶은지, 왜 명품백을 들지 않으면 괜히 주눅이 드는지, 왜 우리집 앞에 지하철이 들어와야 하는지, 우리는 누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가. 우리가 공유하는 세상의 가치는 무엇인가? 이 세상을 헤쳐나가는 능력이 오로지 개인의 능력에 달려있는 지금, 부모가 물러준 재산 말고는 그 어떤 것도 개인의 삶에 버팀목이 되어주지 못하는 잔인한 세상에서 우리는, 또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어떤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할까? 나폴레옹와 그의 추종자들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보며 나의 눈은 어떤 의미로 반짝거리는가? 나는 나의 그 반짝거리는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가? 

 

스노우볼이 동물농장을 다스렸다면 동물농장은 어땠을까? 

 스노우볼은 멋진 지도자이다. 분명히 스노우볼이라면 농장의 동물들에게 희망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완벽한 지도자는 없다. 심지어 완벽한 지도자도 언젠가는 죽음을 맞는다. 죽음을 맞이하고 이제 더이상 우리를 통치하지 못하는 지도자는 그 자체로 완벽하지 않다. 만약 그의 몸이 죽어서도 완벽해 지기 위해서는 그는 신이 되어야만 한다. 예수님이나 부처님, 알라신, 하느님같은 존재가 되어 죽어서도 또는 그 실체가 존재하지 않아도 살아있는 육체를 가진 자들에게 계속해서 희망과 삶의 목표를 주어야한다.하지만 그 일이 과연 좋은가? 또는 바람직하고 옳은일인가? 

인간에게 종교가 필요한 여러 요인 가운데 삶의 목표나 가치가 부재할 때 오는 삶의 아이러니와 고통, 허무함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너무나 나약해서 '어떤 크신 존재'에게 자신의 마음을 의탁하고 싶어하고 따르고자 한다. 그래서 종교의 부작용이나 폐해가 매우 큰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21세기에 종교가 더욱 흥한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사이비 종교문제가 심각한 것은 이런 사회의 가치부재가 불러오는 일종의 여러 결과물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스노우볼은 멋진 지도자이지만 또 마지막까지 멋진 지도자가 일 거라고 믿는다고 해도 그의  유한성이 그의 불완전성을 보증한다. 그를 신격화하는 경우 분명히 더 큰 부작용이 생길 것이 자명하기 때문에 그를 신격화 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농장의 동물들의 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스노우볼과 같이 훌륭한 지도자를 계속 뽑는 것이다. 만약 농장의 동물들이 그들이 바라는 세상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그 가치를 공유하고 그것을 위한 체계를 세우는데 스노우볼이 일조했다면 그는 신격화된 존재가 아닌 세상의 가치로써 영원히 존재하게 될 것이다. 역사는 그런 식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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