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읽은 책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별로 관심없는 지역 '동유럽'의 역사책입니다. 특히 19세기부터 21세기까지의 근현대사를 통찰력 있게 엮은 책 <동유럽 근현대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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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근현대사 - 예스24
서유럽 중심의 역사관이 낳은 무지와 왜곡을 넘어‘사이에 끼인 땅’ 동유럽 바로 알기동유럽은 ‘사이에 끼인 유럽’으로 일컬어지곤 한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대륙이 만나는 3중의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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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이책을 쓰게된 동기는 동유럽에 대해 비동유럽인이 가지고 있는 왜곡된 인식에 문제의식을 가짐으로써 출발합니다. 유럽은 아시아의 거대한 대륙에 비하면 크지 않은 땅덩어리인데 그나마도 왜 동/서로 나뉘어서 동유럽은 왜 서유럽에 비해 아니 지구적 차원에서 보더라도 정치,경제적으로 후진적일까? 그에 대한 답은 그들 민족의 후진성에 있다고 희미하게 인식하고 있다는데 그 문제의식이 있습니다.
중동과 러시아 아프리카 서유럽의 교차점에 위치해 있으면서 민족과 종교, 문화가 뒤섞였다는 점이 동유럽의 특징이고 이러한 특징이 외세의 폭력성을 만났을 때 어떠한 방식으로 표출되는지, 또 그들 스스로 이와 같은 폭력성을 극복하기 위해 어떠한 선택을 하는지에 그 답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많이 접한 역사는 '서유럽 중심' 역사주의에 의해 쓰여진 역사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눈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것 같아도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승자와 지배자의 관점에서 쓰여진 역사서를 보고 그들의 눈으로 세계와 인간을 바라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세계를 균형있고 합리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패자의 관점에서, 피지배자의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더더욱 중요합니다.
<동유럽 근현대사>는 그동안 몰랐던 또는 왜곡돼 알고 있었던 동유럽의 역사를 피지배자의 입장에서, 또 그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쓴 역사서술가의 글을 읽는다는데 큰 의의가 있습니다. 또 동유럽에 대한 책은 '관광지 소개'용 책 말고는 찾아보기 힘든데 이렇게 좋은 책을 만났다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동유럽 근현대사에 대해 통찰력있는 짧은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이 되면 좋겠지만 지식도 짧고 통찰력도 부족하다보니 주저리주저리 길게 쓰게 될 것 같습니다,
먼저 유럽의 지도를 먼저 보도록 합니다.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가 중부유럽니다. 동쪽으로는 러시아와 서쪽으로는 서유럽을 직접 면하고 있습니다.
헝가리 아래로 이름도 낯선 수많은 나라로 쪼개져 있는 지역이 발칸 유럽입니다. 러시아, 서유럽, 서아시아, 아프리카를 잇는 문명의 교차로이면서 유럽의 화약고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이 지도를 보면서 그들의 애환이 느껴지시나요? 일본과 중국을 면한 우리나라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면 왠지 모르게 공감이 갑니다.
동·서유럽 분열의 시작 - 1054 동서 교회 분리
우리는 세계사를 배울 때 유럽에서 의미있는 큰 사건으로 게르만족의 대이동 이후 서로마의 패망과 이후 지속된 동유럽에 대해 배웁니다. 서로마가 패망한 이후에도 동유럽은 기독교의 맹주로서 1천년을 더 살아남는데, 그 사이 1054년 기독교 분리 사건을 겪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그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개념 '유럽의 동서 분열'이 시작됩니다. 현재 동서 유럽의 격차는 1054년 동서 교회의 분리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유럽의 로마카톨릭과 동유럽의 동방정교가 중동부유럽에서 각축을 벌이면서 동유럽내의 종교가 다변하게 됩니다.
오스만 제국의 등장과 함께 시작되는 동유럽 차별의 역사
15세기 오스만 튀르크가 아나톨리아 반도를 점령하고 유럽으로 진출하면서 유럽의 합스부르크 제국과 충돌하게 됩니다. 오스만 제국은 합스부르트 제국과 동유럽에서 여러차례 격돌한 후 더이상 진출하지 못하고 동유럽에 국경선을 긋게 됩니다.
당시 중동부 유럽은 각 왕국과 합스부르크 제국이 세력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시기였는데 이때 오스만 제국이 등장하면서 이러한 세력균형이 깨지게 됩니다. 중부유럽 국가들이 그간 합스부르크 제국과의 세력균형을 위한 다툼을 제쳐놓고 오스만제국의 등장을 저지하기 위해 오히려 합스부르크 제국의 힘을 빌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동유럽에는 '더 동쪽'에 대한 지역적 차별의 시선이 생기게 됩니다. 서유럽은 더 동쪽에 가 있는 중부유럽에 차별적 시선을, 중부유럽은 더 동쪽에 가 있는 동유럽에 차별적 시선을, 동유럽은 더 동쪽에 가 있는 서아시아에 차별적 시선을 보내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이때 더욱 황당한 것은 그들이 합스부르크 제국과 오스만 제국에도 차별을 둔다는 것입니다. 이들 모두 중동부유럽을 지배하고 핍박했던 제국임에도 불구하고 합스부르크 제국과는 달리 오스만제국에 더욱 차별적 시선을 두고 비판합니다. 또한 동유럽이 정치, 경제적으로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원인으로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듭니다. 오스만 제국에 의해 동유럽의 역사가 왜곡된 것이 틀린 말은 아닐지라도 합스부르크 제국에 의해 왜곡된 부분은 애써 부정하는 잘못된 시선이 있습니다.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볼 때 그 어디에도 동서는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
합스부르크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이주정책 - 민족 갈등의 불씨를 지피다
이렇게 합르부르크 제국과 오스만 제국이 동부유럽에서 각축전을 벌이는 와중에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각 민족들을 제국 내에서 이리저리 옮겨 살게 하는 이주정책을 폅니다. 이들 공히 마찬가지입니다. 동유럽을 둘러싸고 가톨릭과 동방정교가 경쟁을 하게 되면서 종교적 갈등의 씨앗이 있는 곳에 더해서 이와 같은 민족의 이주정책은 민족갈등의 불씨를 심어놓게 됩니다.
민족 자결주의 - 민족국가 수립이라는 폭풍
우리나라 역사에서 '민족자결주의'라고 하면 어떤 것이 떠오르시나요?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 자결주의를 통해 당시 제국 열강의 여러 식민지들이 각자 민족들의 의지로 나라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다는 의식이 고취되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3.1운동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독립의 의지를 불태우게 한 고마운 선언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유럽에서는 이 고마운 '민족 자결주의' 원칙이 민족 갈등의 불씨에 불을 지피는 꼴이 됩니다. 앞서 말했듯이 다종교의 상황에 다민족이라는 불길한 조건이 더해졌습니다. 따라서 동유럽 그 어느 지역도 하나의 민족이 완전히 우세한 지역이 없을 만큼 섞이게 됩니다. 이 와중에 1차 세계대전 종전 후 베르사유 체제에 의해 동유럽에 민족국가 수립이라는 숙제가 던져집니다.
민족자결주의는 하나의 영토에 수천년을 살아온 하나의 민족만이 존재하는 조선이라는 나라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영토도 불분명한데다 영토의 주인이 되는 민족도 불분명한 동유럽에서는 갈등의 원천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종교, 다민족, 다문화로 얽혀 오랫동안 살아온 그들에게 자민족을 규정할 수 있는 '민족주의'라는 새로운 틀이 제공되었을 때 나의 정체성을 규정함과 동시에 타민족에 대한 배타성이라는 새로운 무기도 동시에 주어지게 됩니다.
이 와중에 유럽에서의 세력균형이 깨지지 않기를 바라는 서유럽 열강들이 합르부르크 제국의 잔존을 원하면서 중부 유럽에서는 독립이나 자치권이 실현되지 못합니다. 이에 반해 오스만제국 붕괴 이후 오스만 제국을 대신할 힘이 필요했던 열강들의 지지로 발칸 유럽 국가들은 독립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이들의 독립은 외세의 영향력에 의한 무기력한 독립이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베르사유 협정 즉 승전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만들어진 새로운 국경선>
오스만제국 ----->터키라는 민족국가수립(1923) |
합스부르크제국-----> 오스트리아로 축소 |
러시아제국--------> 볼셰비키혁명으로 해체 (1917) |
체코, 슬로바키아-------> 체코슬로바키아 연방 |
폴란드, 헝가리 독립 |
유고슬라비아(세르비아, 크로아비아, 슬로베니아), 로마니아, 불가리아, 알마니아 |
이같은 결정은 첫째 1차세계대전 동맹국들의 연합을 약화시키기 위한 의도와 둘째, 러시아와 독일에 대항하기 위한 동쪽 방어선 구축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민족 갈등의 본격화 - 모든 갈등의 블랙홀 '민족주의'
이렇게 베르사유체제에 의해 수립된 중동부유럽의 국가들의 독립은 굉장히 위태로운 것이었습니다. 민족국가라는 모양새는 갖춘 듯 하지만 서유럽 열강들의 입맛에 맞게 억지춘향식으로 만들어지다보니 내부적으로 갈등은 여전히 품고 있으면서 각자의 억울함에 대한 복수전을 꿈꾸는 상황이 되버린 것입니다.
민족자결주의로 부터 촉발된 민족국가 수립이 동유럽 국가들 또는 각 민족들의 의지로 진행되지 못하고 서유럽 열강들에 의해 좌우되면서 민족주의로 인한 배타성과 편협성, 제노포미아적 성격의 민족주의가 동유럽에 뿌리내리게 됩니다. 또한 서구열강은 민족자결주의라는 원칙 아래 독립을 시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다민족국가라는 모순된 결정을 함으로써 베르사유체제를 스스로 부정하는 행동도 하게됩니다.
따라서 애초에 갈등의 원인이 서유럽 외세의 모순적 행태에 있음에도 갈등의 원인을 파악하지 못한 채 민족주의라는 표면적 갈등이 동유럽의 모든 모순을 빨아들이고 또 폭력적으로 분출하게 하는 매개가 됩니다.
이러한 모순들이 해소되지 못하면서 동유럽의 민족국가건설은 민족간 갈등으로부터 영토분쟁으로 이어지고 전쟁으로 확산되며 민족청소를 자행하는 수준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동유럽 민족갈등이 2차세계대전의 불쏘시개가 된다.
동유럽 민족갈등과 이로인한 영토전쟁이 극심해지자 이를 오히려 역이용한 것이 나치입니다. 나치는 억울한 복수전을 꿈꾸는 동유럽국가들을 이용해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킵니다.
독일은 1차 세계대전의 패배를 설욕하고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러시아는 서부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갖기 위해 '독소불가침 조약'을 맺은 후 전쟁을 발발합니다. 이와 때를 맞춰 나치를 등에 업은 동유럽 국가들은 영토확장을 위해 또는 수복을 위한 내전을 일으킵니다. 이러한 내전을 과정에서 크로아티아가 세르비아에, 세르비아가 보스니아에 민족청소 수준의 폭력을 감행하고 피해자와 가해자 구별없이 중부유럽에서도 이는 예외없이 이루어집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과 얄타협정 - 동유럽, 소련의 위성국화와 정치적 무기력증
2차세계대전 종전 후 얄타협정을 통해 새로운 체제가 등장하는데 이는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초강대국으로 급부상한 소련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얄타협정을 통해 유럽을 동서로 분할하고 그 가운데 동유럽을 위성국으로 만들어 소련에 갖다 바치는 얄타체제가 인정됩니다. 사실상 서유럽의 자유는 동유럽을 소련에 갖다 바침으로써 이루어진 셈입니다.
이후 동서유럽간 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됩니다. 소련은 1917년 민중혁명으로 사회주의 체제의 국가를 건설하며 사회주의 정통성을 획득한 상황이었고 동유럽은 이러한 소련의 위성국으로서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체제를 어느날 갑자기 이식받는 상황에 처한 것입니다. 민족주의가 지난 수십년간 동유럽사람들을 지탱해온 하나의 기둥이었다면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기둥이 더해진 것입니다. 따라서 동유럽 사회주의정권은 사회주의-민족주의라는 생뚱맞은 체제로서 자신들의 정통성을 입증해야만 했습니다.
동유럽 사회주의 정권은 대중에 대한 지지기반이 없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민족주의를 활용해야 했으며, 또한 소련의 눈치도 봐야하는 딜레마에 빠집니다. 다시말해 민족주의라는 자민족 중심주의와 소련중심이라는 사회주의 체제를 동시에 운영하는 이상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1953년 스탈린 사망 이후에는 흐루쇼프가 집권하는데 흐루쇼프는 기존의 강압적인 소련중심체제에서 벗어나 개혁적이고 비교조주의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이에 동유럽권도 독자적인 사회주의 노선을 시작하지만 폴란드를 제외한 헝가리나 체코슬로바키아의 봉기(프라하의 봄)가 소련에 의해 진압되면서 동유럽사람들의 인식에는 '소련체제하에서 정치적 개혁은 불가능하다' 라는 무기력이 퍼지게 됩니다.
동유럽에 퍼진 무기력의 병증은 오히려 반대급부로 과거 '스탈린주의'로의 회귀로 나타납니다. 이 시기 동유럽의 공산당은 대중의 정치적 무기력에 대응하는 조치로 대중이 자기만의 공간에서 소박하게 즐길 수 있는 소비주의를 자극하는 것으로 대처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대중의 정치에 대한 침묵과 순응을 대가로 경제적인 풍요를 제공한 것입니다. 이러한 대처를 '사회계약관계'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관계는 1973년 석유파동으로 경제적 위기를 겪기 전까지 지속됩니다.
1990년 소련의 해체와 동유럽의 두번째 분열과 우회전
1968년 프라하의 봄이 진압되면서 시작된 대중의 정치에 대한 무기력증에 대응해 동유럽 공산당은 피지배계급에 대한 소비주의라는 사회계약으로 위태롭게 지탱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1973년 석유파동으로 이러한 사회계약이 더이상 불가능해 지고 정치적으로도 사적으로도 자신들의 욕구를 분출할 수 없게 된 국민들은 불만이 고조됩니다. 이에 더해 1986년 소련이 고르파쵸프 집권 후 동유럽에 대해 개입을 중단한다는 '시나트라 독트린'을 선언하면서 동유럽 공산당 정권은 일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최초로 폴란드의 공산당이 항복하는 것을 시작으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알바니아 순으로 공산당이 해체됩니다. 이제 자유주의로의 두번째 체제이행을 시작된 것입니다. 하지만 두번째 체제이행은 서유럽에 대한 경제적 정치적 종속관계를 불러옵니다.
서유럽은 신자유주의를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동유럽에 이식하면서 다국적 기업을 통해 동유럽의 경제를 잠식해 들어갑니다. 경제가 잠식당하자 정치도 서유럽의 입맛에 따라 좌지우지됩니다. 신자유주의 체제로 이행하면서 공공재 민영화, 해외투자 유치를 실행하고 공공자원과 노동력이 수탈당하게 되면서 빈곤과 양극화가 심화됩니다.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서유럽의 기득권 세력과 유럽연합이 있습니다.
서구유럽은 자기들처럼 자유롭고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유럽연합이라는 유토피아행 티켓을 가져야 한다고 동유럽을 유혹하고 동유럽은 서유럽처럼 되는 것을 목표로 부지런히 서유럽을 모델로 따라하지만 이미 부처님 손바닥의 처지입니다. 이를 수행한 대표적인 인물이 영국의 신자유주의의 상징인 '대처총리'입니다.
이러한 벗어날 수 없는 늪에 빠진 상황에서 동유럽인들의 선택지는 많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민중들의 의견을 대변한다고 주장하며 다시 보수주의와 민족주의의 기치를 들고 나온 우파 포퓰리즘 정당이 부상하고 대중으로부터 인기를 얻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동유럽, 발칸의 진정한 민주화가 유럽의 민주화
서유럽을 향해, 서유럽처럼 되기 위해 서유럽 코스프레를 하고 30년 가까이 노력했지만 동유럽 사람들은 자신들이 쫓던 꿈이 신기루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오히려 빈곤의 늪에서 벗어날 수도 서유럽 다국적 기업의 착취에서 벗어날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동유럽에는 희망이 없을까요? 우리는 동유럽 신세대 좌파의 상징적인 인물인 크로아티아의 젊은 철학자 '스레츠코 호르밧' 에 의해 촉발된 저항운동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는 동유럽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유럽연합의 민주화를 요구하며 발칸유럽에서 저항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운동은 일파만파 퍼져서 동유럽 각국에서 민영화 반대시위(크로아티아), 우파정권 붕괴(슬로베니아, 불가리아) 등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또한 2015년 그리스 경제위기를 겪은 후 유럽연합의 모순이 더욱 명확해지면서 범유럽 시민 저항운동으로 확산되었습니다.
DiEM25(유럽민주화운동25)로 상징되는 범유럽 시민저항운동이 추진력을 갖고 계속되기를 그래서 공히 민주화의 성지인줄 알았던 서유럽이 알고보니 그들의 자유와 풍요가 동유럽의 희생과 착취를 통해 가능했다는 것을 온 천하에 알리고 유럽 전체가 민주화 되기를 바라봅니다.
<떠오르는 생각>
나의 삶을 규정하는 것들이
내 밖에 있을 때
나는
나의 삶을 어떠한 방식으로
이끌고 나아갈 것인가.
2024년 8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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